
臣昀言
Annunziata
밤은 고요했다. 황궁의 어둠 속에서 감히 소란을 피워 경치고 싶은 이는 없었으며, 검박하고 소탈한 태시제는 즉위하면서부터 나이 든 내관들에게는 충분한 연금을, 과년한 궁녀들에게는 넉넉한 혼수를 주어 출궁시키고 최소한의 궁인들만을 두었으니 엄숙한 궁성 안은 더욱 적막했다. 국난을 평정하고 사해의 안정에 온 힘을 쏟는 청년 황제의 치세였기에, 야경꾼 소리만이 들리는 경성의 밤은 그 고요함이 곧 만인의 평안과도 같은 말이었다. 불침번을 서는 시위와 태감들도 발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삼가며 지켜낸 적막 속에서, 태시제 이민, 장경은 등을 돋우고 몇 건째일지 모를 주소(奏疏)와 장표(章表)를 읽고, 붉은 먹으로 비답(批答)을 달았다. 대부분의 주서에는 “알겠다.”, “그리하도록 하라.” 정도의 몇 자를 적으면 될 일이었지만, 태시제의 어심(御心)을—장경의 진심을 어지럽게 하는 표문(表文)은 따로 있었다. 자단목 서탁 한가운데에 놓인 채, 며칠째 봉인만 뜯긴 상태로 머무르고 있는 봉장(封章)의 비단 피봉에는 주인을 닮아 헌걸차면서도 유려한 글씨로 ‘성상전개탁(聖上前開拆: 성상의 앞에서 열도록 하십시오), 신 윤 근봉(臣昀 謹封: 신 윤이 삼가 봉하였습니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친왕은 선제의 유지에 따라 태자 대신 제위에 올랐다. 그를 제거하려던 세력은 자멸하였고, 천자의 대통에 관한 유언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신하 없었으며, 무엇보다 한참 어린 소년을 용상에 앉히기에 대량의 강산을 휩쓴 전란의 혼돈이 너무나 무겁고 위험했다. 평소였다면 친왕이 동궁을 어찌 제칠 수 있느냐며 바닥에 엎어져 데굴데굴 굴렀을 예조의 관리와 유학자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장경이 그간 조정에서 보여준 능력과 만들어둔 세력이 작지 않기도 했고, 전국옥새를 거머쥐게 되고도 침착하고 현명하게 최후의 전선을 직접 두 발로 밟으며 전쟁을 끝내는 데에만 온 힘을 다했으며, 선제의 홀로 된 황후와 태자를 정성껏 보호하였다는 점도 물론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침묵을 지킨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계승의 예법에 집착하다가 목숨을 내놓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건 안친왕 본인이 가할지 모르는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고, 그들 중 누군가 마지막 황제를 적군의 손에 포로로 넘기는 치욕을 당하지 않고자 어린 천자를 등에 업고 바다에 투신한 육수부의 역할을 떠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안친왕이 태시제가 되어 영토를 수복하고 놀라운 속도로 나라를 재건하여 성세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치세를 이룩하자마자, 살만해진 탓에 그간 간지럽던 입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어쩌면 안회마을 서 백호의 아들 장경이 이 씨라는 성과 민이라는 이름을 받는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원화제가 붕어하기 전 그를 황자로 인정하고 직접 구유(口谕)를 통해 군왕에 봉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노환으로 총기가 흐려진 늙은 황제의 북만 귀비에 대한 회한 때문에 빚어진 거짓 믿음일 가능성이 티끌만큼도 없겠는가? 공교롭게도 변방의 소년을 데려오고 황제의 뜻을 받든다며 하루아침에 황자가 된 안북군왕의 후견인이 된 이는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그 안정후인데, 모든 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북군왕이 안친왕으로, 마침내 천자의 용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항상 안정후가 있지 않았던가? 이 모든 국난이 그의 심계로 빚어진 일이라 매도하는 건 부당한 비약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안정후가 원화제의 애틋함을 빌려 황궁은커녕 경성도 아닌 먼 변방 마을에서 자라난 꼬마 하나를 황제로 키워낸 꼴이 되지 않는가?
안친왕이 대통을 잇게 된 순간의 경위 역시 적지 않은 이들이 개운치 않아 했다. 그는 황태제였던 적이 없으니 책봉 성지도 금인도 없었고 동궁의 주인인 적도 없었다. 안왕을 제위에 올린 것은 융안제가 붕어하기 직전 구두로 남긴 한마디의 유언이었다. 천자의 유지에 감히 순명하려 하지 않는 신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유지를 받든 고명대신도 다름아닌 안친왕 본인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전쟁 중 안왕이 보인 능력을 부정하거나, 종전도 맞지 않은 국토를 재건해야 하는 자리에 어린 태자를 앉히기보다는 이미 노련한 안왕을 먼저 앉히는 쪽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선제의 어필로도 남지 않았으며 두 명 이상의 고명대신과 태후의 증언도 없는 구두 유언은 상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새 황제가 용상에 앉기도 전에 안정후에게 달려간 일은 누구나 알았다. 그야 물론 친히 전선을 방문하여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였겠으나, 이 씨의 강산을 방금 물려받은 주인이 고 씨 성의 군권을 거머쥔 실력자를 후견인으로 자라났으며, 만인지상에 오르자마자 그를 쫓아갔던 모습은 교묘하게 살을 붙이자면 얼마든지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안친왕은 이미 안친왕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미 종묘와 하늘에 즉위를 고하셨으며, 연호까지 이미 개원한 대량의 천자였다. 황제의 정통성에 시비를 걸며 격문을 붙이는 세력을 무엇이라 하던가? 즉위하기도 전에 이미 능란한 정치적 수완을 보이던 젊은 용에게 감히 목을 내놓고 도전할 간 큰 이는 없었다. 그러니 목표는 자연히 그 옆자리로 향했다. 황제의 옆자리라면 보통은 황후와 외척을 말하겠지만, 대량의 누구나 지금의 성상께서 가장 가까이 의지하는 분으로는 안정후 고윤을 꼽을 터였다. 그래서 안정후는, 본인이 자신의 위치와 남들 눈에 보일 모습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꼭 필요한 날이 아니면 함부로 대전에도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하면 성토와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상소는 대범했다. ‘권신을 쫓아냄에 대하여 직언을 드립니다.’ 글의 주인은 이조의 신임 관리였다. 그는 차라리 벼루를 얻어맞고 유배를 당하는 것이 덜 참혹하겠다 싶을 정도로, 문무백관의 앞에서 황제에게 직접 조목조목 상소의 허점을 논파 당하고 사직을 청했다. 다른 이들은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나라에 큰 변고가 없을 때 장군 제후의 처신에 대해 논합니다.’ 그에 대한 황제의 답변은 ‘잘 읽었소.’ 한 마디였다.
그러나 장경이 아무리 구오지존의 권위로 전력을 다해 비호한다고 해도, 고윤에게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무겁고 무거웠다. 단순히 넘겨짚기로 모함을 당하는 일에 대한 짜증과 지겨움이 아니었다. 그는 장경을 사랑했다. 또한 자신이 문자 그대로 분골쇄신하며 지켜낸 대량을—다른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하여—사랑했다. 사랑하는 이가 나라의 주인이 되었는데, 명백히 고윤 때문에, 고윤을 통하여, 고윤을 엮어 그 정당성을 에둘러 공격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태우면 재가 되어 사라질 먹 글자일 뿐인 상소들은, 그리하여 그에게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고윤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러니까 장경이 장경으로, 고윤이 고윤으로 있을 수 있는 자리, 이를테면 후부의 침실에서 완곡하게 사직의 뜻을 비치었다. 이럴 때만 불효막심하기로는 천하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안정후의 양자는 산뜻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 제가 알아서 하겠다며 넘겨 버렸다. 다음에는 황제와 신하로서, 용포와 단령을 입고 서난각에서 독대하며 지병을 핑계로 사직을 청했다. 태시제는 말했다.
“자희, 그대의 몸이 상했음은 모두 지난날 강산을 수호하기 위하여 목숨 아끼지 않고 선봉에 선 결과이니, 어찌 만백성과 하늘과 짐이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대는 지금까지 정성껏 선제와 짐을 보좌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일부 도당의 원망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의 크나큰 공로에 자만하지 않았으니 이는 천하가 익히 아는 바요. 이러한 일대 공신을 짐 모는 나귀처럼 부려 먹었으니, 참으로 그대가 짐을 일깨워주었소. 안정후에게 특별히 온천에서의 휴양을 허락하며 은잔 두 벌과 운금 80필을 내려 짐의 뜻을 표하니 부디 사양치 마시오.”
고윤은 평소의 모습과 달리 얼씨구나 온천으로 떠나는 대신, 다음 날 조회에 조복을 입고 나서 변경 순시를 청했다.
이리되니 장경도 자희가 양보할 만큼 양보했고, 부드럽게 일러줄 만큼 일러주었으며, 타협할 만큼 타협해 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한 걸음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은 어전에서 물러나자마자 지체없이 군마에 올라 변방으로 떠났다. 문관으로 치면 한직을 자처한 것과 다름없는 행동에 그를 탄핵하려는 목소리도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태시제의 승인을 어떤 이들은 황제의 독립선언, 즉 안정후에게 마음이 떠났으니 힘을 실어달라는 무언의 신호로 받아들였는지, 기세등등해져 그저 공손한 표현으로만 포장하여 ‘안정후를 영원히 서북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녹읍이나 좀 더 얹어주시라’는 주장을 펼쳤다. 장경은 꿈에서도 닿기 힘든 머나먼 연인의 곁이건만, 간사한 소문은 천리마가 날개를 단 듯 퍼지는지, 그에 대한 고윤의 마지막 처신이 날아들었다. 바로 이 표문이었다.
얌전히 봉한 자국까지 맞추어 덮어 놓았으면서도, 장경은 글자의 삐침 한 획까지 모조리 그 내용을 외울 수 있었다.
《신 윤이 아뢰옵니다(臣昀言).
신의 집안은 대대로 열성조의 엄중한 뜻을 받들고 두터운 성은을 입었으니, 황공하옵게도 신 또한 가부(家父)의 자리를 물려받아 1품 군후가 되어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대량의 강산을 지키는 데에 힘써 왔습니다. 견마지로를 다하고 분골쇄신하여 도적을 소탕하고 외적을 멸하며 대량의 강산에 한 치의 무도한 침입도 허락지 않음은 그리하여 신의 마땅한 도리 되오니, 어찌 깊고 깊은 은덕에 모두 보답할 수 있겠나이까?
원화제께서 붕어하시기 전, 친히 신에게 어리셨던 지금 폐하를 부탁하셨습니다. 조정에 높은 학식과 아름다운 품성을 지니어 성자신손을 가까이서 섬기기에 적당한 신하가 수두룩했음에도 신이 황공한 신임을 받아 폐하를 뫼시게 되었으니, 신은 엄중히 유지를 받들어 오직 폐하께서 어질게 되시고 거룩하게 되옵시는 길을 충심으로 보필할 뿐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외적으로부터 강산을 수복하여 사해를 평안케 하시고 문무백관과 만백성의 흠송(欽頌)과 송찬(頌讚) 속에 제위에 오르신 뒤에도 지금까지 부족한 신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여 주셨습니다. 신은 감히 폐하께 의부와 스승의 예로, 수족과 심복의 정으로 분에 넘치는 아낌을 받았으니, 일생 있는 힘을 다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군영을 떠나고자 주청을 드리는 것은 아둔한 신이 감히 헤아리건대 신이 현철호부와 군령권을 내려놓아야만 폐하께 더 이상의 누를 끼치지 않게 됨의 사정 때문이옵니다.
신이 있는 자리는 높고도 위험한 자리로, 위로는 폐하의 지엄한 뜻을 받들고 아래로 수십, 수백만의 장병을 보살피고 다스립니다. 하는 일은 오직 폐하의 대업이고 가는 길은 오직 폐하의 뜻에 따름이니, 신은 폐하께 종속된 충실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되옵니다. 그러나 지금 신을 탄핵하는 사람들은 외람되게도 신이 그 칼날을 외적이 아닌 내부를 향해 휘둘렀다고 주장하거나, 멋대로 휘두르며 폐하를 협천자하고 위세를 부리며 영화를 누리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계속 현철호부를 손에 쥐고 폐하를 모시게 된다면 신은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고, 나아가 폐하께서 사사로운 정으로 권신을 두둔하옵신다는 무엄하고 부당한 헛소리가 조정을 떠돌게 될 것이니, 그리되면 신은 폐하를 욕되게 한 죄업을 씻을 길 없습니다. 신이 하루라도 빨리 현철호부를 내려놓고 조정과 군영을 떠나지 않으면 그런 도당의 마음은 하루도 편치 못할 것이니, 그들이 신의 행동에 대해 계속해서 다투고 참소한답시고 나라의 대사를 소홀히 하면 신은 그야말로 폐하의 치세와 나라의 대업을 망친 만고의 죄인이 됩니다. 이것은 정녕 신의 지조에 부합되는 일이 아니옵니다. 이러한 연유로 신이 재삼 고려한 끝에 폐하께 사직을 청하여 신의 충심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어 삼가 이 표문을 받들어 올림입니다.
조심스럽게 청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청을 윤허하시어 병들고 아둔한 신이 관직을 그만두고 행동을 삼가며 많은 사람의 비방을 잠재우게 해 주십시오. 바라옵건대 현철영에는 뛰어나고 헌걸찬 젊은 장수가 많으며, 영추원에는 능력 있고 품성도 훌륭한 인재가 많으니 그들을 널리 등용하시어 금번 서양 오랑캐의 난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전쟁과 방어의 책략을 연구하고 익힘에 전념하여 나라에 공헌하게 해주십시오.
지난날 신이 방만하여 폐하의 성은 입은 몸을 함부로 상하게 하며 폐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드린 일이 실로 마음 떨리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익숙하고 또 낯설었다. 고윤의 필체는 장경이 다른 이들, 고윤과 함께 전선에서 동고동락하며 오래도록 형제와 같이 지낸 장수들까지 감쪽같이 속여 넘길 정도로 모방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그 필체였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신하’로서 ‘황제’에게 극도로 예의와 형식을 갖추는 내용은 서러울 정도로 눈에 설었다. 지금까지 국경과 전선의 크고 작은 수습을 보고하는 주서에도 고윤은 장난스레 눌러 말린 풀꽃을 담거나, 작은 별지에 때로는 달고 때로는 음탕하기까지 한 연인 사이의 사사로운 농을 적어 보내고는 했다. 안정후가 ‘폐하께서 친히 열어보십시오’ 라고 적어 봉한 계주를 감히 중간에서 열어 볼 간 큰 이는 없었기에, 대량에서 가장 지체 높은 두 정인은 그렇게 대담한 비밀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이 글은, 이 글만큼은 달랐다. 누각의 꼭대기는 바람이 거세다는 것쯤이야 장경도 이미 오래 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희가 표문에 ‘나 때문에 너를 욕되게 하는 것은 차라리 내가 오욕과 음침한 소문을 뒤집어쓸지언정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비쳤듯, 장경도 마찬가지였다. 야망보다도, 권력욕보다도, 사랑하는 이를 품고 지켜주고 싶어 오른 자리인데, 그 자리가 사랑하는 이를 다치게 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장경은 그답지 않게 오래 이 글을 덮어 두고 답을 피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자희를 변방에 둔 채 어떠한 처분도 없이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피로와 수심으로 그늘진 눈가를 문지르며, 장경은 문밖의 내관을 불렀다.
“게 있느냐.”
“예, 폐하. 노재(奴才) 대령하였사옵니다.”
“가서 한림원 당직 학사를 불러오라. 짐이 내려야 할 명이 있다.”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젊은 황제의 일 중독에도 익숙해진 대전 내관은 감히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며 종종걸음쳤다. 장경은 뒷걸음질로 나가던 내관의 발길이 채 문간에 닿기도 전에 다시 불러세웠다.
“잠깐, 그냥 두어라. 짐이 친히 쓰겠다. 나가 보아라.”
“예, 폐하.”
그러나 대체 무엇이라고 써야 한단 말인가? 장경의 유려하게 흐르던 붓글씨는 ‘현철영 총사령관 안정후 고윤이 사직을 위해 표문을 올린 것에 대한…….’ 한 줄을 적자마자 갈 길을 잃고 그 자리에 서서 주인의 마음처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마음은 당연히 불윤 비답(不允批答) 네 자를 이어 적고 싶었다. 언젠가 ‘저를 믿으시지요? 당신의 말 한마디라면 저는 칼산과 불바다라도 건널 수 있습니다.’라 전했던 그 마음처럼, 당신은 내가 지킬 테니 안심하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이 달랐고, 안왕과 태시제는 달랐으며, ‘의부존전’으로 시작하는 안부 편지와 ‘황제왈’로 시작하는 비답 역시 달랐다. 그리고 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이 두 손이다. 어쩌면 고윤은, 장경에게 일생을 주겠다던 그는, 장경이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혹은 더는 제어할 수 없기에 내키지 않는 걸음을 끌려왔을 뿐인 걸까? 장경은 이 씨이고, 그가 ‘안정후’이기 때문에? 이민은 천자이고, 그가 현철영의 사령관이기 때문에? 그가 주겠다던 마음은, 연인 장경이 아닌 천하의 주인이며 곧 천하가 된 임금에게 바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
서탁 위의 와사등이 파삭, 파고 불길한 파열음과 함께 깜빡이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장경은 다른 일에 있어서는 무엇이 길하고 불길한지 따위에 일일이 신경을 쓰는 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먼 타지에 자희를 두고 홀로 어둠과 고요 속에 있을 때 점멸하는 등의 스산함은,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있었다. 그것도 몹시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그 때 장경은 기어코 그의 피를 보았다. 이미 곱게 접힌 봉장 하나만큼의 심란한 번뇌 속에 갇힌 장경에게, 그날 자희가 어떤 말로 그를 받아들여 주고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는지보다 사특한 악몽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불붙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면에서 장경은 아주 나약했다. 그 나약함은 오직 자희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호되게 꾸짖거나 다정하게 안아주어서 들끓는 불안에서 건져 줄 이는 지금 곁에 없었다. 장경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불심 깊은 신자들이 경전을 필사하듯 온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이의 글씨를 더듬었다. 얼마든지 ‘황공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폐하께 고하옵니다’ 정도의 정형화된 문장으로 끝맺을 수 있었던 마지막 단락에 ‘폐하의 성은 입은 몸을 함부로 상하게 하며 폐하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드린 일이 실로 마음 떨리고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라 적었을 자희의 마음을, 장경에게만 허락된 그 특별한 형태의 다정함을 생각했다. 한숨처럼 깊은 심호흡을 내뱉은 장경은 다시 붓을 쥐었다.
《불윤 비답(不允批答).
황제가 신성한 뜻을 내리노라(皇帝聖旨).
자희에게 알리오. 그대는 지금까지 오직 정성껏 짐을 보좌하고 나라의 대업을 이루는 데에 근심하며 노고를 아끼지 않았소. 헐뜯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공로에 자만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편안하기를 구하지 아니하여 온 몸이 부서지도록 국란의 평정에만 온 힘을 쏟았음은 천하가 익히 아는 바요. 일부 소인배들이 당파를 만들어 그대를 비난하는 여론을 퍼뜨려 조정을 어지럽히고 나라의 안정을 해치니, 짐은 반드시 그들을 엄중한 법으로 다스릴 것이오. 원컨대 그대는 소인배들의 억지에 개의치 말고 부황 폐하의 유지와 짐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라의 안정과 태평을 위해 애써주시오. 그대와 나의 의는 비록 군신이나 정은 부자와 같으니, 의지하는 정성에 부디 부응하여 주시오. 진실로 사퇴하는 바는 마땅히 불윤하오.
그러므로 이렇게 가르침을 내리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故玆敎示 想宜知悉). 공경하여 받들라(欽此).》
장경의 생에 이보다 길고 장황한 글을 써본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마지막 자의 마지막 획을 긋자마자 그는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숨도 쉬지 않고 써 내린 것 같았다. 그보다 쓰는 내내 숨도 참은 듯 긴장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리라. 제가 쓴 글인데도 낯설었다. 고윤이 ‘신 윤이 두려워 몸을 낮추며 고합니다’하는 모습이 낯선 것처럼, 제가 고윤에게 ‘경의 청을 불윤하노라’하는 일도 퍽 기분이 이상한 일이었다. 고윤에게는 이렇게 답을 보내 두고, 날이 밝자마자 조정에서는 그간 미루어 왔던 가지치기에 착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장경은 피곤한 눈가를 재차 문질렀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창밖으로 어슴푸레한 새벽의 찬 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이르게 뜨고 더디 지는 계절이니 그럴 법도 했다. 머지않아 당직을 맡은 궁인들이 종을 치며 내관과 궁녀들을 먼저 깨울 것이다. 모실 웃전이라고는 동궁에 있는 선제의 태자와 황후도 비빈도 없는 후궁의 유일한 귀부인이나 와병중인 태후, 그리고 황제인 장경뿐이었으나, 궁에는 궁의 법도가 있어 모실 분이 많든 적든 궁인들은 일과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모양은 안 나겠지만 잠시 엎드려 눈만 붙였다 일어날까, 고민하던 장경의 귀에 멀리서부터 정적을 깨고 달려오는 급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녹초가 되어 늘어졌던 몸이 순식간에 긴장으로 굳어졌다. 지존이 계신 황궁에서, 그것도 이 시간에 감히 말을 달릴 수 있는 이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 그 안정후조차도 얌전히 걸어들어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공간에 엄숙한 금기를 깨고 채찍질을 해가며 말을 달리거나, 더욱 긴박한 경우 감히 성상께서 계신 곳에 현응을 들여보낼 수 있는 이들은, 주로 군사적인 급보를 전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었다. 내관들과 시위들 역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장경은 내관이 법도에 맞추어 고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하고 많은 급보 중 하필이면 이런 비보를 들고 천자의 앞에 나아가게 된 불행한 전령병은 말에서 내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친히 달려나와 저를 기다리고 서 계시는 성상을 뵈었다. 그는 이름과 관등을 대며 국례를 행할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고, 덜덜 떨며 엎드려 외쳤다.
“고, 고합니다! 안정후께서, 아, 안정후가 적도(敵徒)의 흉수에 훙(薨)하였습니다!”
그 직후의 기억은, 장경에게 없었다.
서역의 난도, 경성 수성전도, 최후의 해전도 모두 평정하였을 뿐 아니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안정후는, 본인이 몸을 바쳐 만들어낸 평화의 시대에 제 발로 찾아간 변경에서 단 한 발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외모만 보아서는 동영인인지 서역인인지 모호한 사사는 제 독화살이 명중하자마자 미친 듯이 웃고는 자결했다고 한다. 그의 시체는 지금 목과 사지가 모두 잘려 성벽에 내걸려 있었다. 누군가 배후에 있는지, 개인적인 원한인지, 혹은 둘의 악랄한 결합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안정후의 유체는 경성의 성문 앞에서부터 그가 생전에 아끼던 군마가 끄는 수레에 실려 돌아왔다. 후부는 물론 황궁 전체에 눈처럼 새하얀 백번에 덮였다. 안정후는 명목상 천자의 양부였지만 이 씨 종친이 아닌 고 씨 제후일 뿐이거늘, 법도상으로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명에 따라 안정후를 기려 조정이 5일간 정무를 멈춘 데다가, 비보가 들려온 새벽의 조회에서 웅성대던 신하들 앞에 몸소 가장 높은 격의 상복을 갖추어 입고 나온 천자의 감히 지상의 말,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함부로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경성의 민간에서도 마치 국상(國喪)이 났을 때처럼 자처하여 상복을 걸친 백성들이 보였다. 황제가 붕어하지 않았는데 상복을 입다니, 상식적으로는 대역무도한 일이었다. 그러나 구국의 영웅인 안정후는, 그리고 그의 비극은 상식과 법도 따위는 무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천자가 그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니, 경조윤이라고 해서 어떻게 단속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천자는 친부를 잃고 천붕지통을 당한 아들처럼, 혹은 목숨처럼 사랑하는 처를 잃은 지아비처럼 몸소 무릎을 꿇고 향과 지전을 사르며 묵묵히 영구 앞을 밤새워 지켰다. 조복 위에 상장을 갖춘 신하들이 차례로 조문을 오며 그 핑계로 넋이 나간 젊은 황제를 설득하려 해 보았으나, 지금까지 성상께 두 마디 이상을 끌어낸 신하는 없었다. 설마 이러다 진짜 국상을 치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흉흉한 근심이 서서히 대신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할 무렵, 심역이 찾아왔다. 황제가 두 마디 이상 말을 나눈 신하도 처음이었거니와, 심 제독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편전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궁인과 신하들은 일단은 안도했다.
장경의 얼굴도 초췌하게 상해 있었지만, 심역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황제와 신하는, 문이 닫히고 궁인들이 물러나자마자 망자의 양자와 친우가 되어⸺장경과 심 선생님이 되어 눈이 마주치자마자 허탈함과 애석함의 미소를 지었다. 장경도 필요하지 않을 때 굳이 돌려 말하는 성격이 아니고, 심역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둘의 대화는 빙빙 변죽만 울렸다. 이 또한 서로가 서로의 심정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날의 일’을 제외한 모든 근황과 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군신의 대화 소재가 떨어지자, 심역은 다 식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다시 읍했다.
“폐하, 무엇보다 우선하여 신의 독단적인 행동에 죄를 청하나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고개를 들고 말해 보시오, 심 경.”
소매에서 비단 서첩같은 물건을 꺼내는 심역의 손끝에는, 장경의 손에 그것을 넘기는 그 순간까지 망설임과 불안이 그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장경에게 그 물건을 넘겼다. 심계평은 본디 타고나기를 그런 사람이었다.
“신이, 사령관의 막사에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따로 갈무리해 두었습니다. 폐하께 가야 했을 글인 듯하여……. 폐하와 총사령관 사이에 오가는 서간에 함부로 손을 댄 죄 크오니 벌하여 주십시오.”
“심 경, 계평 형님. 일어나십시오. 제게 이런… 큰 은혜를 베풀고 어찌 죄를 청하십니까.”
혈육이 없는 고 사령관의 두 유족은 그제야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장경은 심역이 물러나고 난 뒤, 그의 당부대로 혼자 편지를 열어보았다. 순시를 나가며 언제 또 이런 물건은 챙겨 갔을까 싶을 정도로 근사한 향을 입힌 고운 명주에, 어려서는 밤을 꼬박 지새우며 필사했고, 장성해서는 그를 번민하게도 하고 설렘과 수줍음에 첫사랑에 빠진 처녀애처럼 굴게도 했던 그리운 필체가 적혀 있었다. 이것이 고윤이 생전 장경에게 남긴 마지막 말일 터였다. 그리 생각하니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가 덜컥 겁이 났다. 어떤 이들은 죽은 아내의 흔적을 보낼 수 없어 그녀가 생전에 빚어 놓은 만두며 과자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손도 못 대고 하염없이 바라본다는데, 제가 그런 짝이었다. 글자는 삼켜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도, 이 사람이 제 품에서 훌쩍 떠났듯 그의 글도 장경이 읽고 나면 푸드득 날개를 치며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당신은 이것이 마지막 말이 되리라는 사실까지는 몰랐을 텐데.
《지난밤 허리띠가 저 혼자 풀리더니, 오늘 아침엔 거미가 날아들어 옷소매에 앉더구나. 곧 그리운 얼굴을 보게 될까? 경성에 가면》
글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경성에 오면 당신은 나와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목을 옥죄는 고통을 비집고 명치께부터 아프고 서러운 울음이 터졌다.
나는 당신을 웃으며 맞이하고, 흙먼지를 잔뜩 마셨을 당신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목욕시중을 들고, 머리를 빗어 말려주고, 오랜만에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간의 밀린 정담을 나누고 싶었는데. 당신이 전에 보낸 편지를 들먹이며 이번엔 내가 당신의 허리를 가늠해 보고 싶었고, 당신의 품에 기대 익숙한 안온함 속에 잠들고 싶었는데.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보내려던 글이 ‘흠차’ 따위로 끝나는 글이 되기를 원치 않았는데. 당신의 일생이 이런 식으로 나에게 온전히 주어지기를 바란 것이 아닌데.
비단 한 장에 담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무겁고 떠나버린 목숨이 가벼워, 장경은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아아, ‘의부가 잘못했다, 미인의 얼굴을 눈물로 적시지 말거라’하며 품에 안아줄 당신은 이제 없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남긴 마음, 이 강산이어서. 나는 당신을 따라갈 수조차…….
만가도 곡소리도 없이 고요한 전각에 황제 혼자 아이처럼 통곡하였다. 궁인들은 들어도 못 들은 척, 감히 곁에 다가가지 않았다. 먼 곳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당신은 내세도 윤회도 믿지 않았는데, 그래도 먼저 가서 날 기다려 줄까.